<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3)주변국의 입장. 요르단>
《 목 차 》 · 이·팔 분쟁에 요르단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요르단·팔레스타인·이스라엘, 3국 관계는? · 이스라엘에 빼앗긴 서안지구, 요르단이 취한 행동은? · 요르단이 바라보는 이·팔 분쟁은? |
10월 7일부터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하마스 간 충돌이 격화되면서 중동과 서방세계의 상황이 매우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당초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 방문을 마친 뒤 요르단에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 압델 파타흐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4자 회담을 갖고 인도주의적 지원과 확전 방지 노력을 촉구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병원 폭발 참사가 발생하자 요르단을 비롯한 여러 아랍국은 즉각 이스라엘 비난 성명을 냈습니다. 이어 방문을 하루 앞두고 요르단이 회담을 취소하면서 4자 회담은 무산되었습니다.
이·팔 분쟁에 요르단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인접국이기도 하지만 이·팔 분쟁의 이해당사국이기도 합니다. 오늘날까지도 역내 평화 정착을 위해 힘써오고 있습니다. 요르단은 3차 중동전쟁에서 관할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이스라엘에게 빼앗겼습니다. 한편, 팔레스타인에는 지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한 국가이며 현재 수도 암만 인구의 80% 이상이 팔레스타인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랍국가 중 유일하게 팔레스타인 난민에게 자국 시민권을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요르단·팔레스타인·이스라엘은 언제부터 어떤 관계로 얽혀있는 것일까요? 이·팔 분쟁을 바라보는 요르단의 시각은 어떠한지 현지 언론을 통해 간략하게 다뤄보겠습니다.
요르단·팔레스타인·이스라엘, 3국 관계는?
요르단·팔레스타인·이스라엘 3국 관계의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48년 5월 시온주의를 주창하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했습니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이스라엘 vs 주변 아랍국(요르단,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간 1차 중동전쟁이 발발합니다.
이 전쟁은 아랍에서 '알 나크바(النكبة , Al Nakba, 대재앙)'로 불립니다. 팔레스타인 중앙통계청(Palestinian Central Bureau of Statistics)에 따르면, 당시 이스라엘은 774개 팔레스타인 마을과 도시를 장악, 그중 531곳을 완전히 파괴했고 1만 5천여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이 전쟁으로 1백만 명에 가까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주변 아랍국가로 피난을 떠났는데 이때 생겨난 피란민과 후손들이 현재 '팔레스타인 난민'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1967년 6월,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간 3차 중동전쟁이 발발했습니다. 6일간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가자지구와 시나이반도, 요르단 관할 구역이었던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강 서안지구,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점령하게 됩니다.
1973년 10월, 아랍국가는 빼앗긴 영토를 되찾고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4차 중동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만 이집트에 반환했고 가자지구, 서안지구, 지리적·군사적 요충지이자 수자원 확보가 가능한 골란고원은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습니다. 그리고는 불법 점령한 이곳에 정착촌을 조성해 나갔습니다. 이로 인해 아랍과 이스라엘의 마찰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빼앗긴 서안지구, 요르단이 취한 행동은?
1988년 7월 29일 요르단 국왕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대한 법적·행정적 구속력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즉, 서안지구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 배경에는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일어난 1차 인티파다(الانتفاضة, 팔레스타인의 반 이스라엘 민중봉기)가 있습니다.
한 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고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게 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결권과 독립국가 건설을 요구하며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투쟁을 벌였습니다. 서안지구에서는 이·팔 양측의 무력충돌과 그로 인한 치안 문제가 끊이지 않았고, 이스라엘과의 계속되는 분쟁에 부담을 느끼면서 요르단은 역내 긴장 완화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바로 서안지구를 자국 영토에서 제외시키는 결정입니다. 이후 해당 지역의 통치권은 1994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로 넘어갑니다.
요르단이 바라보는 이·팔 분쟁은?
요르단 외교부 산하 팔레스타인사무처(Department of Palestinian Affairs)는 다음과 같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랍과 이스라엘 간 갈등의 핵심이자 역내, 그리고 세계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사안이다. 수십 년간 지속된 분쟁을 공정하고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해법이 필요하다.
- 이에 요르단은 '두 국가 해법'을 실현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에 지지를 표한다. 1967년 6월 4일의 국경선에 기초하여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지지한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포함한 아랍 영토 점령을 멈추고 점령지에서 철수해야 한다.
-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할 수 있는 권리와 피해보상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난민들이 이러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국가적 책임을 다할 것이다.
- 요르단은 난민, 예루살렘, 안보, 국경, 정착촌, 수자원과 같은 핵심 사안과 관련해 국익에 부합하지 않거나 국가와 국민의 안보를 침해할 수 있는 어떠한 합의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 분쟁의 최종 해결안은 국제적 정당성, 합의된 평화 프로세스, 아랍 평화 이니셔티브(Arab Peace Initiative)에 따라 분쟁의 근원적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이러한 요르단의 입장은 얼마 전 보도된 압둘라 2세 국왕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충돌이 격화되던 시기에 압둘라 2세 국왕은 팔레스타인 난민 수용에 대해 거부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한 '두 국가 해법'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의견을 재차 전하기도 했습니다.
★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 ★
이·팔 분쟁 종식을 위해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전의 국경선을 기준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각각 건설하고 양측이 공존하도록 하는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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